2017.6.9 몽골의 침략과 신미양요를 버텨낸곳 강화도 광성보. 용두돈대 등 유적지를 서울특시 재향경우회 회원님들과 함께 견학하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이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 광해군때 헐어진곳을 다시고쳐 쌓았으며, 1658년에 강화 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 하였다. 그 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고 한다.
광성돈대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돈대로,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 소포, 불랑기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신미양요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4개 소와포 3분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신미양요 무명용사비 신미양요(1871년)때 미군이 1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에 비해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신미순의총은 신미양요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연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중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손돌목 돈대 는 일명 손석항돈대라고도 하며, 용두돈대에 못미쳐 구릉 정상부에 둥그렇게 쌓은 돈대이다. 강화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여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부로, 1679년 세워져 병인 양요와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 되었던 곳이다. 돈대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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