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 김삿갓의 생애
난고 김병연은 안동김씨 시조인 고려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에로 휴암공파의24세 손이다. 1807년(순조7년) 3월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병연(炳淵),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이다. 다섯살때인 1811년 민란의 선구역할을
한 홍경래난이 일어낫을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에게 투항한죄로 처형당하고, 부친은 남해로 귀양을 갔다.
김병연은 멸족의 화를 피해 노복 김성수와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살았다.
훗날 당대의 권문세가인 그의집안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었으나 세상사람들의 괄시와 천대가 심하여 가족들은 10승지(十勝地)로 알려진
영월군 김삿갓면 어둔에 정착하였다. 김병연은 영월 동헌(東軒)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참가하여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
忠節死 . 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시제로 글을 지어 장원을 하였다. 이는 가산군수정시를 예찬하고 신천방어사인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후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집안에 대한 내력을 듣게된 김병언은 조상을 욕되게 하였다는 큰자책감에 빠지게 되어 22세때 노모와 처자식을
영월어둔(於屯)에 남겨둔채 방랑의 길을 나섰다. 이대부터 김병연은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전국곳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는 방랑시인으로 민중의 한과 설움을 해학적으로 읊으며 일세를 품미하였다. 또한 정형화된 한시(漢詩)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시세계를 추구하였고, 파격적인 시작(詩作)활동으로 세계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40년 김립시집을 편찬한 이응수는 김삿갓을 미국의
시인휘트먼(whiman, walt)과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함께 19세기 세계시단의 3대 혁명가로 평가하였다.
김삿갓은 1863년9철종14)3월29일 전라도 화순에서 5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고 3년 후 아들 익균이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하였다. 이곳에 있는 난고 김삿갓문학관은 2003년 "강원의 얼 선양사업"에 의해 개관하였으며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잇는 곳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