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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기에 얽힌 사연

지운/서동식 2008. 5. 6. 20:37
장기에 얽힌 사연 200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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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계시는 낯익고도 정겨운 모습을 보았다. 훈수를 두는 한 어르신의 모습에서 문득
나는 장기를 가르켜 주시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열두 살 때 우리 아빠는 언니들과 나를 장기판 앞에 앉혀 놓고 장기 알들
의 이름과 행보를 가르쳐 주셨다. "장기는 쉽게 말해 초나라와 한나라가 자기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인데..."로 시작된 아빠의 장기 이야기는 내
겐 좀 낯설었으나 흥미로웠다. 아빠는 우리에게 장기를 통하여 인생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장'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은 있으나 임금다운 자제력과 절도를,
 '사'는 비록 무력하지만 끝까지 임금 곁을 떠나지 않는 충섬심과 의로움을,
 '졸'은 한 단계씩 나아가는 착실한 행보에서 알 수 있듯 뒤돌아봄 없는 성실성
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포'는 홀로는 나아가지 못하나 서로 도우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차'는 거침없이 나아가는 행보에 자제력이 결여되지만 용감함과
추진력도 삶에 있어선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외에도 없으면 아쉽
기만 한 '마'와 '상'은 비록 쓰임은 덜해도 무한한 잠재력이 있기에 필요할 때
중히 쓰인다는 점에서 귀한 가르침이 되었다.

이렇게 내게 있어 장기는 놀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살면서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깨닫게 해 준 작은 세계였다.

 

 아빠는 파란색의 초나라를 내게 건네면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었
고 약한 나를 위해 넌지시 차와 포를 떼 주시는 너그러움도 보여 주셨다. 처음엔
매번 아빠에게 지기만 했었는데 장기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내 실력은 크게
향상 되었고 급기야는 아빠와의 맞장기 승부에서 이기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표현할 수 없이 기뻤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진 것에 즐거이
웃음 지으셨던 아빠의 모습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짙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제는 떠나고 안 계신 아빠와 두 번 다시 장기판을 마주할 수 없지만, 아빠의
제취가 배어있는 장기 알들을 가만히 쥐어 보며 아빠가 장기를 통해 가르쳐 주신
삶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출처 : 지운의 삶의향기
글쓴이 : 지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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